오늘은 모처럼 늦게까지 잤다.
눈 떠보니 아기와 남편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주방에서 놀고 있었다.
일요일 9시 30분.
남편이 말한다.
"희망퇴직 신청해야지"
어, 그래... 해야지.
사실 오늘 바로 신청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계약직 시절을 포함하면 근 10년을 다닌 회사..
그동안 징글징글했어도... 내 20대와 30대 초반을 바친 첫 회사였으니
미련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남아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그곳에서 점점 안주하고 마음이 병들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했던 생각은 딱 한가지.
'저 사람도 다니는데. 내가 왜 나가?'였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지금껏 버텼던 회사인데.
사상 초유의 희망퇴직이 시행되었다.
희망퇴직 문서가 뜨고 지금껏 치열하게 고민했다.
막상 퇴직을 하려니 두려운 마음이 앞섰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망설였던 거다.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앞으로 이 큰, 듬직한 간판을 버리고
내 이름 석자, 내 실력 하나로 소중한 우리 가정을 잘 지킬 수 있을지였다.
그런데 또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고 생각하면,
내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내가 쌓고 싶은 커리어와 회사의 니즈가 맞는가?
아니었다.
내가 나의 전문분야를 성장시키려면, 나는 회사에 끊임없이 나의 존재가치와 역할을
끝없이 증명해야 했다.
물론,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회사에도 필요한 일이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나의 전문분야가 작금의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일인가? 객관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오전 10시. 희망퇴직 신청서와 서약서를 작성해 현관문을 나섰다.
비가 왔는지 땅이 축축했지만, 뭐.. 걸어서 5분 거리니. 씩씩하게 패딩입고 걸어갔다.
그동안은 희망퇴직할 생각에 마냥 신났었는데
막상 오랜만에 회사 건물에 들어오니 묘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이렇게 사원증 찍고 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싶어서
엘리베이터에서 영상을 찍었다. 1,2,3,4,5.. 그리고 내가 근 10년간 머물렀던 6층.
인사부에 들어가니 부장과 팀장 두분이 근무하고 있었다.
담당자 하나만 주말근무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둘 중 하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차분하게 희망퇴직 신청서 내러 왔다고 이야기하고 퇴직 관련 안내를 받았다.
발령문은 내일 모레 시행된다고 한다.
씁쓸했다.
10년 다닌 회사인데, 단 이틀이면 퇴직처리가 된다니.
희망퇴직신청서를 내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지금까지 쇼핑도 하고, 웃고 떠들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는데
아직도.. 내가 퇴직을 신청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꿈같다.
희망퇴직하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나인데.
이 우울감은 뭘까?
미래에 대한 불안일까?
미련일까?
마음이 춥다.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괜찮다.
방금 엄마가 전화해서 아빠가 우리딸 공부하는데 뭐 해준게 없다고
스타벅스 텀블러 사주고 싶다고 샀다고 한다.
아빠가 해준게 왜 없어.. 말하고 싶었는데 또 쑥스러워 말 못했다.
오늘부터 나는 든든한 회사 간판이 없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져야하는 퇴사자가 되었다.